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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게시판의 논쟁에 참고문헌
이름: 김희안/미니쉘

2003-02-24 04:02:58, Hit : 1465, Vote : 61


아직 꼬리말이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에 이리저리 헤메이다 발견한 문서입니다.
글쓴이를 알수 없어서 밝히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논쟁에 서툰 저와 우리나라 모든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립니다.


-------------- 인용시작 -------------------



논쟁에서의 준칙과 반칙





1.

혹시 논쟁이란 게 규칙에 따라 정당하게 진행되는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 분은 없는지? 논쟁의 '논(論)'이라는 글자가 그런 인상을 주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 논쟁은 논의 자체의 순수성을 방해하는 수많은 외적 요소와 함께 얽혀 돌아간다. 굳이 '논의'라든가, 하다 못해 '토론'이란 말 대신 논쟁이란 단어를 쓰는 것부터가 논쟁의 '비순수성'을 드러내는 게 아니겠는가.

논쟁은 말 그대로 싸움(爭)의 성격, 전투적 성격이 강한 때문에 진실에 대한 순수한 추구와는 별개의 원리로 진행되며 또한 그 때문에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소피스트 및 수사학자의 일상적 행위에서 그 목표는 진실 또는 진실에 대한 욕망이 아니고 자기가 옳다는 순전히 개인적인 만족에 있었다. 그들은 경쟁, 영광을 위한 투쟁이라는 원시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 호이징가의 「호모 루덴스」p.232 )




2.

논쟁 상황에서 '이건 부당하다'라고 느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 봤다. 물론 '부당하다'라는 느낌은 이쪽 편에서 논쟁 외적인 거라고 여기는 장치를 상대가 일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에 받는 것이다.

제일 먼저 나온 게, 상대가 권위를 이용해서 이쪽의 말을 차단할 때.상대는 자신의 권위가 해당공간에서 갖는 장악력을 이용해서 이쪽의 말을 (물론 듣기 싫은 소리이기 때문에)무시한다.

상대는 이쪽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한다. 타이밍을 잘 조절해서 이쪽의 말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이쪽의 말을 공중에 붕 뜨게 만들어서 상황의 미묘한 전개 속에 흘려 버린다.

자신의 말에 설득력과 장악력을 갖게 하기 위해 상황의 타이밍을 잘 조절하는 문제에 대해 쿤데라는 「느림」에서 잘 설명하고 있는데, 이번 경우는 자신의 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묵살하기 위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국면에서 사용되는 타이밍의 기법인 것이다.

권위가 좀더 분명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물론 많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 논쟁의 여지를 권위가 처음부터 깔아뭉개는 경우이다. 교수와 학생간의 대화, 원래는 활발하게 논쟁적 상황을 조성해 가야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그게 된다고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우선 학생들부터가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자신의 의견을 참담할 정도로 깎아서 내놓는다. 대학생활에서 배우는 거라곤 쟁점을 피해 가는 기술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3.

쇼펜하우어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원제:Die Kunst, Recht zu behalten)」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기법들은 몇 가지 핵심적인 요소로 정리될 수 있다. 논쟁의 기본이라고 할 만한 한 가지는, 자신의 입장은 최소화하고(다시 말해 방어할 면적을 최소화하고) 상대의 입장은 갖가지 확대 해석을 통해 최대화(상대의 방어선은 길어져서 어딘가 틈이 생기게)하는 방법이다.

미국의 저명한 변호사 게리 스펜스는 「논쟁으로 이기는 법 논쟁 없이 이기는 법(원제 :How to argue and win every time)」에서 사람들이 말을 잘 못하는 이유는 가장 적절한 말을 찾으려 너무 애쓰는 탓이라면서, 우선 대략적으로 자기가 말하려는 것들을 다양한 표현을 써서 쏟아 놓듯이 하라고 쓰고 있다.

말하는 연습으로는 괜찮겠지만, 그리고 우호적인 상황에선 괜찮겠지만 논쟁이라는 대결 국면에서 스펜스가 말한 이런 방식을 써서는 곤란하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대에게 이쪽의 입장을 확대 해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꼴이 되니까.

그렇다고 자기 논지를 제한하기 위해 너무 많은 전제와 부수적인 조건을 달면 소심하고 인색해 보여서 결국 설득력을 잃게 된다. 논쟁에서의 설득력이 논지의 정교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4.

논쟁을 가장 어지럽게 만드는 요소는 아무래도 '인신공격'일 것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인신공격은 분명한 반칙이다. 그러나 게임에서 성공하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가 반칙의 활용인 만큼, 인신공격이란 요소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논쟁의 향방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쇼펜하우어는 우월한 상대에 의해 이쪽의 패배가 확실해졌을 경우 인신공격을 하라고 썼다.

인신공격은 자의식이 팽배한 데 비해 이를 조절하는 기술은 별로인 대다수 논쟁자들에게 심한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상대가 자신을 (부정적으로)규정하는 말을 하는 순간 이쪽은 그 말에 딸려가듯이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려 자아의 바깥면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논쟁에 정신을 집중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논지 자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는 동안에 뻔뻔스러운 상대는 이쪽에 대해, 그리고 논쟁에 대해 더욱 더 자기 유리할 대로 규정해 버리고 만다. 어떤 말들일까? 모두 평가의 말이다. 너는 원래 그런 인간이었다느니, 치사하다느니, 세상 보는 눈이 삐뚤어졌다느니, 지금 그 말은 말도 안 된다느니… 이들 평가는 사실 논지에 뒷받침되지 않은 평가이고, 고로 논리에 부합하지 않은 말들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상대가 자신에게 인신공격을 해 올 경우의 대비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상대의 말이 사안과 상관없다는 것을 침착하게 지적하면 된다. 상대의 공격은 분쇄되고, 이렇게 되면 상대는 오히려 당황해서 자신의 말이 논의와 연결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악수(惡手)를 두기도 한다. 어쨌든 상대가 졸렬한 반칙을 썼음을 명시하는 게 대응책이다.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 「불멸」에서 문화의 엄숙주의와 경박성을 둘러싸고 폴과 그리즐리라는 두 사내가 벌이는 논쟁을 자못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쿤데라 자신이 탁월한 말재주꾼이기 때문인지 그의 저작에는 논쟁의 성격과 국면에 대한 언급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쿤데라는 이 두 사내가 왜 이처럼 논쟁에 열을 올리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단 말다툼이 터지면 이미 늦고 만다. 서로 자신의 주장을 그만큼 확신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옳지 않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 그들로서는 진실을 보유하지 않은 자로 지칭된다는 것이 곧 명예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면 자기 자아의 한 조각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생각 따위는 그들에게 조금도 중요치 않다. 다만 그 생각들이 그들 자아의 속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매번 타격이 가해질 때마다 그들은 살이 따끔거리는 아픔을 맛보는 것이다. -「불멸」pp.157∼158 )




5.

여기에서 논쟁이 갖는 전투적 성격의 근간이 드러난다. 논쟁은 진실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의식과 자의식의 대결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논쟁술을 일러 "정신으로 하는 검술"이라고 했다.

폴과 그리즐리의 논쟁은 치열하게 전개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그리즐리의 엄숙함과 둔중함은 폴의 경쾌함과 유연함에 대적하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쿤데라는 그리즐리의 손을 들어 준다. 그리즐리는 폴에게, 자신은 폴과 같은 인간들이 어떻게 풀리는지 똑똑히 봤다면서, 나치나 공산주의 운동에 뛰어들던 지식인들을 언급했다. 그리즐리의 이 마지막 공격에서 논쟁 장면은 끝난다.

그리즐리가 사용한 건 명백한 인신공격의 방식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폴이 논파되지 않자 폴의 자의식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건지도 의심스럽지만 쿤데라는 폴이 그리즐리의 마지막 말에 심한 상처를 받은 것으로 묘사했다.

그 상황에서 폴이 한 마디만 했더라면, 당신의 말은 명백한 인신공격이고 당신이 묘사한 젊은이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고로 당신의 말은 사안과 상관없다, 라고 했더라면, 폴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리즐리가 치졸한 방법을 썼다는 점을 까발김으로서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쿤데라는 그리즐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균형'을 잡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울러, 유연한 정신을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실은 취약한 자의식을 위태롭게 붙들고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효과도 거두었다.


6.

논쟁에서의 타이밍이나 인신공격이라는 꼬리물기 싸움을 모두 규정하는 요소, 다시 말해 논쟁의 가장 규정적인 요소는 바로 관객이다. 폴과 그리즐리가 한치 양보 없이 싸웠던 것도 둘의 주위에 모여 있던 동료들 때문이었다.


(그 말다툼은 순전히 결실 없는 것이며, 무용하고, 그 구내매점의 냄새나는 분위기에만 한정된 것으로 청소부들이 창문을 열 때 냄새와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탁자 주위로 모여든 작은 청취자 무리가 정신을 집중시키는 양을 보라!

그들은 모두 커피를 홀짝거리는 것도 잊은 채 침묵을 지키며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두 적수는 둘 중 하나를 진실의 소유자로 지명할 그 소규모의 여론에 한사코 매달린다. - 위의 책, p.158 )



쿤데라가 지적한 것처럼 논쟁에 의해 가려지는 논지의 진실성에 자의식을 결합시키게 하는 요소도 사실은 관객의 존재다. 승부를 냉엄하게 가르는, 혹은 가르고 싶어하는 관객의 요소가 논쟁자들을 전투적으로 만든다.

논쟁은 무엇보다도 우선 관객을 염두에 둔 행동, 관객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다. 그냥 단 둘만 있을 때 행해지는 논쟁 역시 잠재적인 관객을 상정한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논쟁의 결과가 바깥에 알려졌을 경우'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논쟁이라는 게임의 심판은 바로 관객이다. 그래서 논쟁의 질과 수준을 결정하는 건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질과 수준에 좌우된다. 관객이 엄정한 이들이라면 논쟁자들은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관객들이 똑똑치 못한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진실에 대한 담담한 추구만으론 부족해서(관객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지에 대한 복잡한 계산 때문에) 논쟁의 기법은 복잡스러워진다. 쇼펜하우어의 논쟁술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줄기 역시 몽매한 관객을 어떻게 다루느냐, 관객에게 어떻게 자신이 옳은 것 같은 인상을 주느냐의 문제다.


7.

논쟁은 스포츠와 닮았다. 관객 앞에서 양측이 맞붙는다는 점에서.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선 해당 종목의 숙련자가 심판을 보는 데 반해(그럼에도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논쟁은 관객 자체를 심판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논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엄혹한 판정을 내려야 할, 저변의 관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입장'이 없는 관객, 그저 막연한 호오(好惡)의 감정에만 내둘리는, 비판적 태도를 결여하고 진실에 대한 욕구랄 것도 없는 관객들이 곧잘 논쟁의 흐름을 망친다.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성숙을 막연히 기다리는 것으로 그쳐야 할 것인가.

우선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얘기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논쟁에서 이기려 한다면, 혹은 논쟁에서 지고 싶지 않다면, 우선 자신에게 엄혹해져야 한다. 바깥의 어느 누구보다 더.

또 하나, 전술적인 측면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무엇보다 논쟁은 진실을 향한 도정(道程)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쿤데라가 말한 '자아의 속성을 이루고 있는 진실'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진정한 논쟁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강준만, 유시민, 진중권 등이 격렬하게 행해 온 갖가지 논쟁도, 진실에 대한 그들의 투철한 의지와 섬세한 균형감각을 보자면, 누가 지고 이기고를 떠나 논쟁 당사자들에 대해 존경의 염을 품게 한다.



2000년 7월 16일 phalanx



--------- 인용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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